2025년 11월 27일, 경북대학교 사회과학기초자료연구소 주최로 열린 특강에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강동현 교수는 ‘사회과학에서의 AI 관련 연구 동향’을 주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연구환경을 해설했다. 강 교수는 AI가 사회과학에 제공하는 기회와 도전, 그리고 교육·조사·정책 영역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를 구체적 사례와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이날 강의는 AI 기술이 방법론적 도구를 넘어 사회·문화적 기술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연구자·교육자·정책 담당자들의 관점 전환을 요청했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사회과학의 연구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강 교수는 먼저 현재의 변화를 두 가지 축으로 설명했다. 하나는 ‘AI를 활용해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흐름’, 다른 하나는 ‘AI 자체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흐름’이다. 그는 AI가 사회과학 연구에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새로운 자료를 생산하고 기존 조사 방식을 대체하며, 사회적 상호작용까지 시뮬레이션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이날 강의에서 가장 먼저 제시된 사례는 프로그래밍 질의응답 플랫폼 ‘스택 오버플로(Stack Overflow)’의 변화였다. 챗GPT 등장 이후 플랫폼에 올라오는 질문이 급격히 줄어든 현상은, 공공 지식 생산 방식이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실제 그래프에서는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질문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강 교수는 “학생들에게 GPT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말하며,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분석의 교육방식이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전제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교수는 LLM의 이미지 생성 능력이 실시간 번역·편집을 수행하는 단계까지 발전했음을 언급했다. 예시로 소개된 ‘나노 바나나 프로’는 이미지 장면을 자동으로 재구성하고 언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환하는 기능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은 디자이너·번역가·영상 편집 등 창의 노동 전반에도 압력을 가하며, 노동시장 재편 논의와 연결된다. 강 교수는 “신규 인력 채용 여부가 AI 기술의 비용 대비 효용에 따라 판단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AI 도입이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도 핵심 주제였다. MIT 미디어랩 연구진이 수행한 실험은 LLM 사용이 학생들의 인지적 부담을 감소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억력과 글쓰기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브레인 온리 그룹, 검색엔진 그룹, LLM 그룹으로 나누어 네 차례 에세이를 작성하게 한 실험에서, LLM을 지속적으로 사용한 학생들은 도구 의존도가 증가하고 뇌 활성 패턴도 저하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LLM을 쓰던 학생들이 돌연 도구 없이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급격한 수행 저하가 나타난 점이 주목할 만하다. 강 교수는 이를 소개하며 “학생들의 학습 평가 방식이 대면·구두 기반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후 강의는 LLM 내부 구조 분석을 통해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모델 내부에서 형성·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로 이어졌다. 미국 연방의원 552명의 DW-NOMINATE 점수를 이용한 연구는 특정 어텐션 헤드가 정치적 진보·보수 성향을 선형적으로 예측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강 교수는 “정치적 관점이 모델 내부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규명하려는 시도는 사회과학과 컴퓨터과학의 접점을 확장하는 중요한 영역”이라고 평가했다.
AI가 여론조사와 설문 조사 방식 자체를 대체할 가능성도 중요한 논점이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LLM에게 응답자의 인구통계·이념 정보를 프롬프트로 주어 가상의 응답자를 생성하게 하고, 실제 ANES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0.8~0.9의 높은 상관을 보이기도 했다. 스탠퍼드 그룹의 연구는 더 나아가, 1,000명의 실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에이전트’를 만든 뒤 이를 사회조사에 활용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강 교수는 “LLM이 사람과 매우 유사한 응답을 생성하는 단계에 와 있는 만큼 여론조사의 대표성 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동화 흐름에는 뚜렷한 위험도 존재한다. GPT-4o가 직업군별·성별·연령별 이력서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여성 이름에는 경력이 적은 프로필을, 남성 이름에는 더 높은 경력을 자동으로 구성하는 성별·연령 편향(gendered ageism)이 관측된 연구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언어별 문화적 표현 차이로 인해 “결혼 위기 중인데 이혼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영어로는 ‘이혼해라’, 중국어로는 ‘하지 마라’라는 상반된 답변이 생성되는 사례도 발견됐다. 강 교수는 “이런 편향은 모델이 사회적·문화적 규범을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연구자들이 LLM을 사용할 때 모델의 문화적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마지막으로 AI를 문화·사회적 기술(cultural & social technology)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최근 논의를 소개했다. LLM은 방대한 인간 데이터를 압축·요약해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생성하는 기제로, 시장 가격·정부 통계·관료제적 분류 체계와 같은 사회적 요약 장치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AI를 기술적 도구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정보 분배, 정책 설계 전반에서 AI가 새로운 제도적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현 교수의 특강은 AI 기술이 사회과학 연구환경을 흔드는 단순한 도구적 변화가 아니라, 지식 생산·정치적 판단·교육·노동시장·사회 규범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동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AI가 여론조사·텍스트 분석·데이터 태깅·시뮬레이션 등 사회과학의 핵심 기능을 빠르게 대체하는 가운데, 연구자들은 모델의 편향·대표성·문화적 맥락·제도적 함의를 분석할 새로운 방법론을 구축해야 한다. 앞으로의 연구와 정책 논의는 AI의 효용 극대화와 위험 최소화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사회과학이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여부가, AI 시대 민주주의와 지식생산 체계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AI 시대, 사회과학 연구는 어디로 향하는가: 연세대 강동현 교수 특강이 보여준 변화의 지형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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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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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언어모델의 확산과 교육·연구·정책 현장의 재편… 사회과학이 직면한 기회와 위험
출처: AI PEN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