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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독려인가, 조작인가? 유권자 동원 전략이 선거 공정성에 미치는 양면성

엄기홍 기자 | 2025.10.16 | 조회 44

투표율 제고를 위한 정당의 전략이 선거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시민의 정치 효능감과 투표 비용이 핵심 변수로 부각

출처: Oxford University Press

출처: Oxford University Press

2025년 9월,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된 「Oxford Handbook of Electoral Integrity」의 강명훈·박천호 공저 연구가 유권자 동원 및 억제 전략이 선거 공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층 분석했다. 이 연구는 누가, 언제, 왜, 어떻게 투표하게 되거나 포기하게 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투표계산(calculus of voting) 이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비교했다. 정당의 전략적 유권자 동원이 시민 대표성과 정치적 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다.

이 연구는 투표 동원과 억제 전략이 단순히 투표율 증가 혹은 감소를 넘어, 선거의 정당성과 민주주의의 건강성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분석한다. 먼저 연구자들은 Anthony Downs의 '투표계산' 이론을 바탕으로 유권자들이 투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네 가지 핵심 요소(p, B, C, D)를 제시한다. 이는 각각 '결정적인 한 표가 될 확률(p)', '정책적 편익(B)', '투표의 비용(C)', '시민의 의무감 혹은 표현적 만족(D)'으로 구성된다.

정당과 정치 행위자들은 이 네 요소에 전략적으로 개입하여 투표 참여를 유도하거나 방해할 수 있다. 예컨대, 자신에게 유리한 지지층은 유인하고, 반대층은 투표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선택적 동원(selective mobilization)'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는 특히 미국 남부의 짐 크로우 시대, 흑인 유권자 억제 사례처럼 인종·계급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는 현대 선거에서 정당이 활용하는 다양한 동원 수단도 소개한다. 예를 들어, 교통편 제공이나 보육 지원을 통해 투표의 비용을 낮추는 방식은 동원 효과를 높이는 반면, 유권자 ID 요구나 투표소 정보의 비공개는 억제 전략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전략은 합법적일 수도 있으나, 그 의도와 맥락에 따라 실질적인 투표 억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유권자의 '정치 효능감'과 '정체성'이 투표 동기 형성에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선거가 경쟁적이고, 자신의 한 표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될수록 투표 참여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투표가 무의미하다는 인식은 투표 억제로 이어진다.

동원 전략은 정치제도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구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교적 합법적인 동원 방식이 일반적이며, 시민의 민주주의 규범 의식도 높다. 반면, 신생 민주주의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투표매수, 위협, 폭력 등 비민주적 동원 방식이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이처럼 제도적 환경과 사회적 자본 수준에 따라 전략의 성격과 효과가 달라진다.

정당의 자원 배분 전략도 중요한 요소다. 핵심 지지층을 공략할지, 부동층을 설득할지, 반대층을 억제할지는 선거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이 모든 전략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정 지지층 중심의 전략은 정치적 무관심층과 부동층을 더 소외시키고, 선거 결과의 대표성을 왜곡시킬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전략적 동원은 단기적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시민의 정치 효능감, 선거 제도에 대한 신뢰, 시민의무로서의 투표 관념을 약화시키며, 민주주의 전반의 제도적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이는 다시 선거 참여 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 연구는 투표 동원이 반드시 선거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특히 정당의 선택적 동원 전략은 유권자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선거 결과의 정당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원 전략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경로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며, 그 해결책으로는 공정한 선거 재정 제도와 시민 정치교육, 그리고 독립적인 선거관리기구의 강화가 제시된다.

앞으로의 정책 과제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제안된다. 첫째,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자원 불균형이 선거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시민의 정치 효능감을 높이고 투표의 내재적 가치를 회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정당 활동을 보장하되, 억제 전략과 같이 비민주적 방법은 강력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투표율 제고가 단지 전략적 목표가 아닌, 민주주의 심화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 https://doi.org/10.1093/oxfordhb/9780197777497.013.0022
유튜브: https://youtu.be/W-QPilVZTrQ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