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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율성 확대’가 왜 ‘중앙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가

엄기홍 기자 | 2025.10.28 | 조회 91

도쿄·오사카·오키나와 사례로 본 일본 분권체제의 역설과 갈등 지속 메커니즘

출처: 한국정치학회보

출처: 한국정치학회보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지방분권을 제도화했지만, 일부 지역은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는 이들 사례를 통해, ‘지방 자율성의 확대’와 ‘자원 비대칭의 지속’이라는 이중 구조가 전략적 갈등을 유발하는 핵심 메커니즘임을 분석한다.

일본은 ‘지방분권추진법’(1995), ‘지방분권일괄법’(2000), ‘삼위일체 개혁’(2006)을 통해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여전히 중앙의 행·재정적 재량권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앙과의 갈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는 갈등을 전략적으로 구성하고 지속해 왔다. 이 연구는 이러한 차이가 자원 조건과 정치 전략의 상호작용에 기인함을 밝힌다.

도쿄는 높은 재정자립도(재정력지수 1.10), 방대한 공무원 조직, 수도로서의 정치적 상징성을 바탕으로 중앙의 개입을 우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 체제하의 도쿄는 츠키지 시장 이전 문제, 코로나19 대응, 아동정책 등에서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정치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펼쳤다. 도의회 장악, 선거 승리, 독자적 정책 이미지 형성은 이러한 전략의 결과였다.

오사카는 재정력지수 0.73으로 도쿄보다 낮지만, 유신회라는 지역정당을 기반으로 행정개혁 아젠다를 지속 추진하며 정치세력을 조직화했다. 오사카도구상(부-시 통합 개혁안), 카지노 통합형 리조트(IR) 유치, 지방분권 촉구 결의 등은 행정 비효율성과 중앙 정책에 대한 비판을 갈등 구도로 구조화한 사례다. 유신회는 이를 통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조직적 성과를 거두었다.

오키나와는 재정력지수 0.36으로 전국 최하위권이며, 미일 안보체계하에서 지방의 행정권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강한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초당파적 반기지 연대(올 오키나와)를 형성하고, 주민투표와 행정소송 등으로 중앙과의 대립을 이어왔다. 오나가 지사와 다마키 지사는 재정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경제전략(아시아경제전략구상, 신시대 오키나와)을 제시하며 기지 문제를 정치적 주체성과 자치권의 상징으로 전환했다.

이 연구는 세 지역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도쿄는 ‘자원 우위에 기반한 독자적 정책 실행’, 오사카는 ‘개혁담론을 통한 정치세력화’, 오키나와는 ‘정체성 동원을 통한 갈등 정당화’로 요약된다. 공통점은 갈등이 정책 목표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자원의 동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방선거와 여론전에서 갈등 프레임은 단체장과 지방정당의 정당성 확보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의 정치적 효과와 정책 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도쿄는 코로나 대응에서 중앙과의 조율 부족으로 혼선을 초래했고, 오사카는 두 차례 도구상 주민투표 부결로 개혁 동력이 약화되었다. 오키나와는 중앙의 재정압박과 법적 제재 속에서 실질적 정책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즉 갈등 전략이 정치적 영향력은 확대했지만, 주민 편익과 행정성과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결국 이 연구가 제시하는 갈등 지속의 메커니즘은 네 단계로 요약된다. 첫째, 분권화 이후 자율성 확대와 자원 비대칭이라는 구조가 공존한다. 둘째, 지방정부는 보유 자원에 따라 정치적 전략을 구성한다. 셋째, 갈등은 선거와 언론 등을 통해 정치자원으로 환원된다. 넷째, 갈등은 자율성 주장으로 재구성되며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정치적 정당성은 높아지지만 정책의 불확실성과 조율의 실패는 누적된다.

이 연구는 지방자율성과 중앙-지방 갈등이 동반되는 분권체제의 구조적 긴장을 해명한다. 지방정부는 자율성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갈등을 활용하지만, 이로 인해 중앙과의 정책 조율이 약화되고 제도적 불안정성이 커진다. 갈등은 단체장의 퍼포먼스 정치와 결합하며 정당성 자원으로 활용되지만, 반복될수록 행정성과는 후퇴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분권 개혁은 자율성과 자원의 괴리를 해소하는 제도 설계와 함께, 중앙-지방 간 조율기제 구축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갈등이 아닌 실질적 협력이 가능한 분권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권한 이양과 자원 배분의 균형, 그리고 이를 매개할 수 있는 제도적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

논문: https://doi.org/10.18854/kpsr.2025.59.3.004
유튜브: https://youtu.be/4cjUQuE2R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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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