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이재현 교수(배재대)와 서재권 교수(부산대)는 2003년과 2015년 아시아 바로미터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 시민의 정부 신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향한 신뢰가 별개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하며, 지방자치 30년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얼마나 다른 두 정부를 떠올리는가? 이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1991년 지방자치제의 부활 이후 30년간 점진적인 분권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정책 결정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시민의 정치 인식 역시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에 연구진은 2003년(지방자치 10년차)과 2015년(지방자치 24년차)의 시민 인식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시민들이 지방정부에 보내는 신뢰는, 단순히 중앙정부 신뢰의 그림자에 불과한가?"
연구는 Seemingly Unrelated Regression(SUR)이라는 통계기법을 통해 두 가지 신뢰가 서로 얼마나 독립적인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3년에는 두 신뢰 간의 오차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반면, 2015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이 사라졌다. 이는 시민들이 점차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따로 평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회귀분석 결과, 지방정부 신뢰를 설명하는 요인들이 점차 분화되고 있었다. 시민사회단체(NGO)에 대한 신뢰는 지역정부 신뢰와 강하게 연결되었으며, 경제에 대한 낙관도 지방정부 신뢰와는 오히려 역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 중앙정부 신뢰는 대통령 지지도, 정당 신뢰와 같은 기존 정치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오히려 지방정부에 대한 신뢰는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방정부가 대통령의 '그림자 정부'로만 인식되지 않고, 그 자체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는 단순히 통계적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분권과 지방자치가 시민의 인식 지형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독자적 신뢰 기반을 갖췄다고 해서 제도적 독립성까지 확보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지방정당의 부재, 중앙정당의 지역 공천 독점 문제 등을 지적하며, ‘자치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치제도 개혁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지방정부를 독립된 신뢰 주체로 만드는 법제적·정치적 기반 마련이 한국 정치의 주요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논문:
https://doi.org/10.1002/app5.317
유튜브: https://youtu.be/Hwe7GwdLTuU
지방자치 30년, 국민 신뢰는 어디에? ‘정부 신뢰’의 이중 구조 드러나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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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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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치 신뢰는 중앙정부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있어 … 한국, '지방정부 신뢰' 독자 형성 중

출처: Asia & the Pacific Policy Studies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