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AI PEN

정당의 입장, 집권 상태에 따라 달라졌다 —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제한적 당파성' 분석

엄기홍 기자 | 2025.08.07 | 조회 31

집권 여부와 권력구조가 정당의 정책 선호에 미치는 영향을 중대재해처벌법 사례를 통해 분석

출처: 한국정치학회보

출처: 한국정치학회보

손정욱 가천대학교 교수는 「권력구조와 제한적 당파성: 중대재해처벌법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과정을 분석하여 정당의 노동시장정책 선호가 당파성과 함께 '집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본 연구는 20·21대 국회를 대상으로, 대통령의 당파성과 국회 다수당의 구성에 따른 권력구조 유형에 따라 각 정당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했다. 기존의 당파성 중심 분석을 보완하며, 정당의 정책 선호가 집권 여부에 따라 전략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8일,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재계는 경영자 과잉처벌, 기업 활동 위축 등을 이유로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법안이 발의되기까지는 정의당의 지속적 요구와 사회적 참사의 반복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17년 노회찬 의원이 최초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대 국회 내내 법사위 법안소위에조차 상정되지 못했지만, 이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양당의 입장은 크게 변화했다.

손 교수는 이를 ‘제한적 당파성(constrained partisanship)’ 모델로 설명한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당파적 이념에 따라 노동시장정책에 입장을 취하지만, 집권 시에는 유권자가 경제성과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묻는 점을 고려하여 기업의 반발이 예상되는 법안에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당파성이 불일치하는 여소야대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이에 따라 정당의 전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논문은 이러한 ‘집권 상태’를 네 가지 유형, 즉 ① 보수 대통령-여대야소, ② 보수 대통령-여소야대, ③ 진보 대통령-여대야소, ④ 진보 대통령-여소야대로 구분했다. 각 경우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정책 선호 및 입법 행동은 크게 달라지며, 중대재해처벌법 논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전환이 명확히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초반(2017~2020, 진보 대통령-여소야대) 민주당은 법안 발의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여소야대라는 국회 구조에서 정의당의 단독 발의는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민주당은 정부 입법 추진에도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확보한 뒤(진보 대통령-여대야소), 국민의힘이 야당이 되자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의당과의 ‘약자와의 동행’ 프레임을 통해 법안에 찬성 입장을 취하게 된다.

당시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공개 석상에서 법안의 통과 필요성을 언급했고, 당 차원에서도 유사 입법안을 발의하는 등 법안 통과에 협력했다. 반면, 민주당은 오히려 상생을 강조하며 법안에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고, 정의당과 국민의힘의 입법 연대가 형성되자에야 법안을 뒤늦게 발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사위 논의에서도 국민의힘은 정의당 안을 유지할 것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정부안을 중심으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보수 대통령-여소야대), 국민의힘은 입장을 선회했다. 법안의 형사처벌 조항을 완화하거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의 실효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유예 연장안도 추진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야당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법안의 본래 취지를 강조하며 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집권 상태의 변화가 양당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뒤바꾼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정당 간 입장 변화가 정당 이념의 변동이 아닌 전략적 행동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당파성은 여전히 핵심 변수이지만, 집권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정책 선호에 강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즉, 정당은 득표 가능성과 정책 목표 사이에서 선택하며, 특히 집권 중일수록 경제적 책임 회피와 같은 실용적 전략이 우선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정당의 정책 선호를 ‘정책-집권-득표’라는 복합적 목표 하에서의 전략적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통령제 하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당파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 정당의 입장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사례는 이러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정당의 제한적 당파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향후 노동시장 정책 입법과 관련해 집권 상태를 분석 변수로 포함시켜야 함을 시사한다.

향후 입법과정에서도 정당의 정책 선호 변화는 단순한 이념 구도가 아닌 집권 구조, 유권자의 평가, 선거 전략 등 다양한 정치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는 정치권의 입장 변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민이 정당의 정책 일관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보다 구조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논문: https://doi.org/10.18854/kpsr.2024.58.2.005
유튜브: https://youtu.be/h8BxdImpTqw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