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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 거버넌스 법제화 논의 본격화

박혜신 기자 | 2025.08.31 | 조회 19

대구·경북 의료현장, 자체 의료 특화 AI 구축과 입법 지원 필요성 제기

출처: AI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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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열린 ‘메디컬 AI 포럼’에서는 경북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지역 의료계와 학계, 정치권 인사들이 참여해 의료 인공지능(AI) 활용과 법제화 필요성을 논의했다. 행사에는 국회의원, 의료정보학자, 병원 관계자들이 참석해 ▲병원 특화 대규모 언어모델(LLM) 구축 ▲데이터 공유 및 보안체계 마련 ▲입법을 통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특히 이 자리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은 의료 데이터의 민감성과 활용의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률안 제정의 필요성이었다.

의료계는 고령화 가속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인해 맞춤형 진료체계 전환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환자별 유전적 성향, 환경적 요인, 약제 반응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처방이 이루어지는 기존 시스템은 치료 효과의 편차와 부작용 문제를 낳고 있다. 이에 정밀의료 기반의 데이터 활용과 AI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과거 IBM ‘왓슨’ 시스템 도입 논란처럼 단순 규칙기반 AI는 현장 적용이 미비했으나, 최근 LLM 기반 AI는 멀티모달 데이터 학습을 통해 보다 실질적인 진단·행정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경북대병원은 이미 자체 의료정보센터를 중심으로 환자 차트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데이터의 비정형성, 개인정보 보호, 외부 서버 의존성 문제 등으로 인해 범용 모델을 단순 도입하기보다 병원 특화 AI 구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이미 자체 의료 LLM을 개발해 외래·입원·보험청구 등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반면 지역 거점 병원은 예산과 인프라 부족으로 도입에 제약을 받는 상황이다.

이에 메디컬 AI 포럼에서는 ‘서버린 AI(주권형 AI)’ 개념이 강조됐다. 외부 플랫폼 의존을 최소화하고 국가·기관 차원에서 독립적인 AI를 구축해야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의료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동석 교수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과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관리 방안을 제시하며, 병원 간 데이터 직접 공유 없이도 모델을 공동 학습시킬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고 표준화된 데이터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핵심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문제는 재원과 제도적 뒷받침이다. 포럼에서 이인선 의원과 우재준 의원은 AI 연구개발(R&D) 예산 중 의료 분야 반영 필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정보 규제 완화 및 의료 데이터 활용 법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GPU 확보 등 고비용 인프라 문제는 병원 단독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국비 지원과 입법적 근거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아울러 현행 법체계는 의료 데이터의 비식별화·가명처리 등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연구 활용에 제약을 주고 있어, 법률 개정을 통한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AI가 의료진의 진단을 대체하기보다는 행정업무 경감, 연구 효율성 제고, 환자 교육자료 생성 등 보조적 역할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의료법상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AI 활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의사결정 주체는 반드시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확인되었다.

서울아산병원 김영학 교수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AI 도입의 한계를 지적하며, 기술 개발 자체보다도 ‘어떻게 임상에 정착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보건당국이 의료 AI의 효과 검증과 비용효과성 분석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지역 의료기관이 독자적으로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지역 특화 데이터와 연구 네트워크를 활용해 차별화된 모델을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포럼을 통해 의료 AI 도입의 기술적 가능성과 법제적 한계가 동시에 부각됐다. 경북대병원을 비롯한 지역 의료계는 자체 특화 AI 구축을 위한 초기 단계에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예산과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의료법상 책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향후 국회 차원에서 의료 AI 활용 근거법 제정,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 연구개발 지원 예산 확보 등이 추진될 경우, 지역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의료체계’ 구축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의료와 AI의 융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입법 과정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박혜신 기자 | aipen.hyes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