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로 평가된다. 이 연구는 국제정치학의 ‘예방전쟁’ 논리를 응용한 대통령-의회 동태적 협상모형을 기반으로, 갈등이 어떤 조건에서 탄핵 시도와 예방적 쿠데타로 발전했는지를 설명한다. 갈등의 구조적 배경, 의회의 탄핵 가능성 증가, 대통령의 선제적 선택에 영향을 준 제도적·역사적 요인을 분석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취약성을 짚는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은 한국 현대 정치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종결됐지만, 왜 대통령이 이런 극단적 조치를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은 남아 있다. 이 연구는 개인의 성향이나 심리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설명을 넘어, 대통령이라는 제도적 행위자가 구조적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 인센티브를 가졌는지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는 먼저 비상계엄을 ‘친위 쿠데타’, 특히 ‘예방적 쿠데타’ 개념으로 규정한다. 쿠데타 중에서도 현직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견제세력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반적 쿠데타와 구분된다. 대통령이 강한 헌법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실질권력이 약해지는 조건에서 이러한 예방적 쿠데타의 유인이 커진다는 기존 연구를 적용해 한국 사례를 해석한다.
연구가 제시하는 핵심 모형은 대통령-의회 관계를 협상 게임으로 설명한다. 대통령이 권력 확대안을 제시하면 의회는 이를 수용하거나 탄핵을 시도할 수 있다. 의회의 탄핵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탄핵 비용이 감소할수록 의회는 탄핵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 반대로 대통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회의 탄핵 위험이 증가한다고 판단할 때, 오히려 선제적으로 의회를 공격하는 예방적 쿠데타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국제정치학의 ‘예방전쟁’과 동일한 구조다.
연구는 윤석열정부의 실제 정치 조건에서 이러한 이론적 메커니즘이 작동했다고 분석한다. 한국 대통령의 헌법권력은 미국보다 강하고 남미 대통령과 유사한 여러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22년 취임 이후 윤석열의 여당 의석은 국회 전체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 권력 기반은 취약했다. 또한 당·정 갈등, 대중 지지율 하락 등으로 실질권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점이 실증 분석으로 제시된다. 연구는 이러한 ‘강한 헌법권력 + 약한 실질권력’ 조합이 대통령을 제도적 위기로 몰아넣는 주요 요인이라고 본다.
여당의 종속성 역시 핵심 변수다. 윤석열정부 내내 여당은 대통령의 정책과 인사를 견제하는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고, 국정 운영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는 남미 연구에서 확인된 ‘대통령에게 종속된 여당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경로’와 동일한 패턴이다.
역사적 경험 또한 예방적 쿠데타의 실행 가능성을 높였다. 한국은 노무현 탄핵소추와 박근혜 탄핵이라는 강력한 선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야당에게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는 심리적 신호를, 대통령에게는 “나도 탄핵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부여했다는 것이 연구의 해석이다.
연구는 2023~2024년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빈도가 급증했고, 언론 보도와 여론조사에서도 탄핵 가능성이 점차 현실적 이슈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의 실질권력이 감소하고 탄핵 가능성(p)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윤석열은 ‘특검 수용’ 등 타협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더 큰 위험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연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윤석열이 비상계엄이라는 선제적 대응을 선택한 것으로 본다.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이 밝힌 여러 담화와 최후진술 등에서도 그는 야당의 탄핵 움직임을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연구는 평가한다. 특히 178회에 달하는 탄핵·퇴진 집회, 여야 갈등, 검사 탄핵 등을 근거로 대통령이 정치적 압박을 실제적 위
기로 받아들였음을 강조한다.
결국 이 연구는 비상계엄을 단순한 오판이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헌법권력과 실질권력의 불균형, 여당의 종속, 탄핵 선례 등 구조적 요인이 결합된 제도적 결과로 분석한다. 여당이 독립적으로 견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대통령-의회 관계가 협상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제도적 위기가 촉발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러한 판단은 남미와 미국 사례와 비교해도 일정한 설명력을 가진다는 것이 연구의 주장이다.
연구는 또한 한국의 권력 구조 개편 논의가 대통령의 헌법권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에만 집중되어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질권력까지 고려한 ‘균형적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 여당의 독립성과 조직적 성숙이 민주주의 안정에 핵심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탄핵이라는 역사적 선례의 장기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며, 향후 제도 설계에서 선례의 중요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 연구는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을 제도적 시각에서 해석하며, 대통령-의회 관계가 협력적 방향으로 재설계되지 않는 한 유사한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회 중심의 견제 장치, 여당의 독립성, 실질권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제도 개혁이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선택을 개인의 리더십이나 심리로 환원하지 않고 구조적 인센티브로 설명한 이번 분석은 향후 개헌 논의와 정치제도 설계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예방적 쿠데타’로 읽는 제도적 충돌의 핵심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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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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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권력과 실질권력의 불균형, 여당 종속, 탄핵 선례가 만든 정치적 임계점
출처: 한국정치연구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