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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경제 투표를 강화하다: 상대 경제성과 선거 결과의 연결 고리

엄기홍 기자 | 2025.04.29 | 조회 10

글로벌 시장 통합이 유권자의 경제 평가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

세계화, 경제 투표를 강화하다: 상대 경제성과 선거 결과의 연결 고리

출처: European Political Science Review

박범섭 교수는 1980년대 이후 29개국 156회 선거 데이터를 분석하여, 세계화가 오히려 경제 투표를 강화한다는 실증적 연구를 발표했다. 기존 통념과 달리, 경제 개방도가 높을수록 유권자들은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성과를 비교해 정부를 평가하며, 이를 통해 선거 책임성이 강화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국제정치경제 분야에서는 국가 경제의 세계 시장 통합이 정책 선택의 수렴을 초래하고, 그 결과 정부가 국내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고 오랫동안 주장되어 왔다. 이에 따르면, 세계화는 경제성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흐리게 하고, 경제 투표(economic voting)를 약화시킨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러한 기존 이론을 반박하며, 세계화는 오히려 유권자에게 비교 기준을 제공하여 상대 경제성과에 대한 평가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타국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유권자들은 국내 경제를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증 분석 결과, 국내 성장률이 타국에 비해 우수할 경우, 경제 개방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여당의 득표율이 더욱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경제 성과가 저조한 경우에는 더 큰 불이익을 받았다. 체코 공화국의 2010년 총선 사례가 이를 보여주는데, 체코 경제는 유럽 평균과 비슷했지만, 주요 비교 대상국인 폴란드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이 여당의 대패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세계화는 '능력 충격(competence shock)'과 '외생적 충격(exogenous shock)' 간의 상대적 분산을 변화시킨다. 개방경제에서는 외부 충격이 공통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국내 정부의 정책 능력을 상대 비교를 통해 더 명확히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무역량 증대 등 세계화는 타국 경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비교 평가를 수행하도록 만든다.

특히 경제 개방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는 경우, 상대 경제성과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개방도가 낮은 국가는 이러한 효과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또한 금융 세계화 지표(FDI, 포트폴리오 흐름 등)는 무역 개방성에 비해 상대 경제성과 투표 간 연결을 강화하는 데 있어 제한적인 역할만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본 연구는 세계화가 경제 투표를 약화시킨다는 기존 가설에 도전하며, 글로벌화가 유권자의 비교 판단 능력을 강화하고 선거 책임성(electoral accountability)을 오히려 증진시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특히 정부는 경제 성과 부진을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기 어려워졌으며, 상대적 성과가 선거 성패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향후 연구 과제로는 미디어 보도량과 비교 평가 간의 구체적 상관관계를 정밀 측정하거나, 글로벌 경제 정보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 수준을 개인 단위로 분석하는 작업이 제시된다.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책임성의 새로운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본 연구가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논문: https://doi.org/10.1017/S1755773923000127
유튜브: https://youtu.be/DmNhUUhBSuI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