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김동일 교수는 『정치사상연구』 제29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나키즘의 핵심 가치인 ‘자율성’을 중심으로 분배 정의의 목적과 주체를 새롭게 조명했다. 해당 논문은 위계 권위가 아닌 자율적 시민이 분배 원칙을 설정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분배 정의 논의에 아나키즘이 기여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분배 정의는 자원과 기회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무엇을 기준으로 나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사회정의 문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어떻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왜’ 그리고 ‘누가’와 ‘무엇을 위해’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부차시되어 왔다.
김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분배의 목적”과 “분배의 주체”라는 논의의 중심을 아나키즘의 시선에서 재구성한다. 아나키즘은 무정부 상태나 혼란이 아닌, 위계적 실천 권위는 거부하되 설명 가능한 이론적 권위는 존중하는 사상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철학은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기존 국가나 제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자율적인 시민 개개인의 판단과 책임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자율성은 단순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권리가 아닌, 이성적 판단을 수반한 ‘이차적 자율성’이다. 즉, 자신이 따를 원칙 자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개인이 감수한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분배 정의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평등이나 효율이 아니라 ‘자율성 실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한 분배의 전제 조건으로 ‘정치적 자율성’이 강조된다. 이는 경제적·신체적 안전 보장과 공동체 내 평등한 정치적 발언권을 포함한다. 자율성을 실현하는 시민이 분배 원칙을 수립할 때, 그 원칙은 민주적 정당성과 공공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또한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 왈저의 복합평등론과의 비교를 통해 김 교수는 아나키즘이 기존 분배 정의론과 상보적이며, 특히 ‘누가 기준을 만드는가’라는 권력 구조의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임을 강조한다.
이번 논문은 아나키즘이 단순히 이상적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분배 정의 논의의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분배 원칙을 설정하고 적용하는 주체로서 ‘자율적 시민’의 개념은 향후 사회정책, 법안 설계, 지방 자치 영역 등에서 활용 가능한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분배 정의 원칙이 향후 입법 논의에까지 확장된다면, 보다 포괄적이고 책임 있는 민주주의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 https://doi.org/10.37248/krpt.2023.11.29.2.99
유튜브: https://youtu.be/pefeJYfw-go
“분배 정의, 누가 무엇을 위해 결정해야 하나” 아나키즘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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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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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을 중심으로 분배 원칙과 주체를 재조명한 정치철학적 분석

출처: 정치사상연구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