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발표된 엄기홍 경북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회의 정서 양극화는 제21대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는 법안 공동발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회의원 간 정치적 친분을 수치화하고, 이를 통해 정서 양극화 지수를 도출해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특히 보수 계열 정당에서 정서 양극화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국회 임기 말에 이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양상이 유권자 정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운영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치 양극화 연구는 이념적 차이에 주로 집중되어 왔으며, 정치인 간 감정적 분열인 '정서 양극화'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분석이 부족했다. 엄기홍 교수는 이러한 학문적 공백을 메우고자, 정치인의 정서 양극화를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 도구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의 정서 양극화 추이를 분석했다.
이 연구의 핵심은 법안 공동발의 행위를 정치적 친분의 신호로 간주하는 데 있다. 한국 국회에서 법률안을 발의하려면 최소 10명의 공동발의자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정치적 지지와 신뢰가 있는 동료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착안하여 연구자는 특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대해 다른 의원이 공동발의한 횟수와 그 법안의 전체 공동발의자 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친분지수’를 산출했다. 이후 자당 의원과 타당 의원에 대한 친분지수를 비교하여, ‘정서 양극화 지수’를 계산했다.
정서 양극화 지수는 자당 의원에 대한 친분이 높고 타당 의원에 대한 친분이 낮을수록 높은 값을 가지며, 이는 해당 의원이 타당에 대해 강한 감정적 거리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두 친분지수 간 차이가 작거나, 타당 친분지수가 더 높은 경우에는 낮은 정서 양극화 지수를 갖는다. 이러한 측정 방식은 국회의원 간 감정적 유대 혹은 단절의 상태를 정량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된다.
실증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서 양극화는 제19대 국회(2012~2016)와 제20대 국회(2016~2020)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제21대 국회(2020~2024)에 이르러 뚜렷하게 심화되었다. 특히 보수 계열 정당의 경우, 자당과의 친분지수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타당 의원과의 친분지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정서 양극화 지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제21대 국회의 보수 정당 정서 양극화 지수는 제20대에 비해 무려 40% 가까이 증가했다(29.2 → 41.0). 반면 진보 계열 정당은 제20대 대비 제21대에서 다소 완화된 정서 양극화 지수를 보였으나, 이는 타당과의 친분지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당과의 친분지수 역시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주목할 점은 국회 임기 후반, 특히 선거와 공천을 앞둔 시기에 정서 양극화가 극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이다. 제19대와 제20대 국회 모두 5년 차에 가장 높은 정서 양극화 지수를 기록했으며, 제21대 역시 같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공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의원들이 자당 중심의 정치 행보에 몰입하고, 타당과의 협업은 극단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엄 교수는 이러한 정서 양극화가 단순히 의원 간의 갈등을 넘어서, 민주주의 전반에 구조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서 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국회 내 협치는 실종되고, 정책은 당파적 이익에 따라 왜곡되며, 입법부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 정치 구조에서, 여당과 행정부가 동일 정당 소속일 경우 국회의 균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
이러한 정서 양극화는 유권자에게도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정치인의 이념적·정서적 극화가 유권자의 인식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즉, 정치인의 갈등 양상이 그대로 유권자의 분열로 이어지며, 이는 장기적으로 정치 혐오와 민주주의 회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국회의 정서 양극화가 실질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경험적 근거를 제시함과 동시에, 향후 22대 국회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보수 계열 정당에서 나타난 지속적 상승 추세는 정서 양극화가 구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엄기홍 교수는 정서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협치 유인을 제도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방의회 차원에서 나타나는 비교적 낮은 정서 양극화 수준에 주목하여, 국회 운영의 개선 방향을 지방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연구는 향후 국회 내부의 계파 정치, 또는 지방의회의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으로도 확장될 수 있어 학문적·정책적 활용도 면에서도 높은 잠재력을 가진다.
정서 양극화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정치의 본질인 협력과 타협을 가로막고 있다. 이를 정량적으로 드러내고 실질적 해법을 제안하려는 이번 연구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논문 보기:
https://doi.org/10.21487/jrm.2024.11.9.3.1
유튜브 보기: https://youtu.be/YmeqHGOweUE
법안 공동발의로 본 정서 양극화, 21대 국회에서 더 심화되다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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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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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간 감정적 불신의 정량적 증거… 정서 양극화 지수 개발로 22대 국회 전망도 제시

출처: 연구방법논총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