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후보는 “현재의 정치 구도는 단순한 보수-진보 구도가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기존의 보수 세력이 오히려 극우화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중도보수의 정체성을 자처하며 시장주의·성장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진정한 진보정치는 그 대척점에서 ‘사람 중심’의 체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비판을 기반으로, 분배 정의, 노동권 보장, 소수자 권리 증진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현재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 문제,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 정규직-비정규직 간 처우 문제 등에서 원칙과 현실 사이의 조율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권 후보는 “큰 줄기에서는 차별을 없애자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며, “현실적 절충과 이상적 목표 간의 긴장을 인식하되, 포기하지 않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입법 과제는 노동기준법의 전면 개정이었다. 1953년에 제정된 기존 법은 산업화 시기의 제조업 노동자를 상정하고 있으며, 현대의 디지털·비정형 노동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등은 현재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법적 노동자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사용종속성’ 중심의 기존 기준을 ‘경제적 종속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물리적 감독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간접적 지휘 아래 일하는 사람들도 그 생활 수단이 노동에 기반한 경우 노동자로 추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사례를 인용하며 그는 “노동자성의 추정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주장할 경우, 사용자가 그렇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며, 입증되지 않는 한 법적으로 보호받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쿠팡, 배달 플랫폼, 학습지 교사 등 많은 이들이 실질적 노동자임에도 개인사업자로 위장되어 있다”며, 이는 명백한 법적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권 후보는 “노동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이 제공한 노무의 대가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고용계약의 형식보다는 실질적 경제 의존도를 기준으로 보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노동자’ 개념의 실질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기존 법률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기준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존중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는 ‘포용적 정치’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가장 먼저 보듬어야 할 대상은 지금도 거리에서 외치고, 고공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이라며, 정치가 사회적 약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정치가 희망을 주지 않으면 누구도 믿지 않는다”며,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정치야말로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발언은 단순한 입법 과제를 넘어서 정치의 방향성 자체를 묻는 선언에 가깝다. 단순히 의석 확보를 위한 전략이 아닌,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해 그는 “좌우의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하도록, 진보가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정당이라는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진보가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를 변화시키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함을 뜻한다. 권 후보는 특히 복지, 노동, 인권, 환경 등 개별 아젠다의 정책화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실질적 변화를 제공해야 진보정치가 생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권영국 후보가 강조한 노동기준법 개정과 노동자 정의의 확대는 이미 국회 내 일부 진보계열 의원들과 노동시민단체 사이에서 주요 입법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법은 전통적 이해관계자, 특히 사용자 단체와의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단기간 내 실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경제적 종속성 기준’과 ‘노동자 추정 원칙’은 노동법 개정 논의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역시 대선을 앞두고 노동과 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설정하고 있는 만큼, 권영국 후보가 제기한 담론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 의제화될 여지가 있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 문제는 이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바 있어, 이들에 대한 보호 입법은 정치적 부담이 적은 영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반 노동 실태조사와 고용형태 재분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향후 정책 실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권 후보의 발언은 향후 전략의 뼈대를 제공한다. 단순한 정체성 선언을 넘어, ‘가장 아픈 사람부터 보듬는 정치’라는 구체적 실행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진보정당이 유권자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정당정치의 중심에 둘 것을 촉구했으며, 그것이 곧 진보정치의 생존 방식이자 정당성 확보의 열쇠임을 명확히 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넘어서 ‘노동 중심의 사회’, ‘차별 없는 공동체’, ‘포용적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권영국 후보의 메시지는, 단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입법, 제도, 정치 모두를 바꾸려는 실천적 요청이며, 한국 정치가 마주한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담론을 실현할 정치적 의지와 제도화의 추진력이다. 진보정치가 그 중심에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튜브: https://youtu.be/ZcKZW-SaDVA
김도연 기자 | polidoyeon@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