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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경북대에서 ‘호의’의 의미를 묻다

전호열 기자 | 2025.12.01 | 조회 24

복현콜로키움 강연에서 ‘호의’의 철학적·사회적 함의를 진단하고 학생들과 적극적 질의응답 진행

2025년 11월 26일 오후 4시 50분, 경북대학교 인문학진흥관에서 복현콜로키움 주최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강연 “호의에 대하여”가 진행되었다. 강연은 새로 출판한 동명 저서를 바탕으로 구성됐으나, 약 30분간의 간단한 발언 이후 대부분의 시간이 학생 질문과 대화로 이어졌다. 강연은 법과 철학, 일상 윤리의 경계를 탐색하면서 호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학술행사 이상의 활발한 교류의 장이 되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이번 강연은 새로 출간된 저서 ‘호의에 대하여’를 기반으로 구성됐다. 책 자체가 강연자의 블로그 글들을 모아 다듬어 출판된 만큼, 전문적 법철학보다는 삶 속에서 호의가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호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다 서정적이고 일상적 언어로 풀어낸 저작이다. 이러한 성격은 강연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문 전 재판관은 시작과 동시에 “나는 학사라 너무 어려운 것엔 대답 못해요”라고 말하며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는 행사 전반의 질의응답 세션에서 편안하고 유쾌한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강연은 전통적인 의미의 ‘발제 중심 구조’보다는 학생들이 실제로 호의를 어떻게 경험하고 고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한 학생은 자신을 “문형배 재판관의 팬”이라고 소개하며 사고관이 형성된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법조인의 철학적 기반과 가치관이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문 전 재판관은 개인적 성장 과정뿐 아니라 사회적 불의나 갈등을 마주하는 경험이 사고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며, 호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단순한 감정적 기질이 아니라 오랜 성찰과 실천의 결과임을 설명했다.

다른 학생은 “호의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호의의 윤리적 지위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과도 연결되는 주제였다. 문 전 재판관은 호의를 일방적 시혜가 아닌 “관계를 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의의 수용이 곧 타인의 의도를 인정하고 인간관계의 상호성을 만드는 첫 단계라고 설명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개인적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신뢰 저하 문제와도 닿아 있어, 강연의 내용이 학문적·사회적 맥락 모두와 연결되는 지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질문은 “호의를 베풀어 호혜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호의가 사적 관계를 넘어 구조적·제도적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에 문 전 재판관은 호혜적 사회는 거대한 정책이나 강제 규범에서 시작되지 않으며, 오히려 “작은 실천의 반복”이 그 기반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불의에 대응하는 방식이 곧 사회적 호혜의 기반을 이루며, 이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 질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불의를 무조건 참지 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는 호의와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지점에서 학생들은 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어떤 학생은 “생활 속 작은 불의를 현명하게 참지 않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문 전 재판관은 불의를 참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직접적 대립이나 공격적 대응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문제를 발견한 뒤 그것이 어떤 구조적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위치와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라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지침을 넘어 갈등 관리, 사회적 책임, 공적 의사소통의 원리 등 다양한 법·사회적 요소가 결합된 조언이었다.

이와 같은 대화 중심의 강연 방식은 학생들로 하여금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법조인이자 저자로서 문 전 재판관이 지닌 철학적 관점을 보다 깊이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호의라는 개념이 법적 범주 바깥에 위치하면서도 사회적 갈등·신뢰·책임과 같은 정치적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강연은 단순한 신간 소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적 품성과 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행사의 분위기 또한 대학 강연의 형식적 틀을 뛰어넘었다.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문 전 재판관은 이를 모두 진지하게 듣고 답했다. 참석한 학생들은 강연자의 말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함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이는 최근 대학 현장에서 보기 어려운 활발한 학문적 소통의 풍경이었으며, 복현콜로키움이 구축해온 ‘열린 학술 대화’의 취지가 잘 살아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강연은 법조인의 철학적 성찰이라는 주제를 통해 호의, 불의, 상호성, 사회적 신뢰 등 다양한 이슈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 전 재판관의 발언은 법적 판단의 경직된 틀을 넘어서 개인과 사회가 어떤 윤리적 기반 위에서 상호 작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갈등 문제를 성찰하는 데 의미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향후 이 강연에서 제기된 호의의 윤리와 실천의 문제는 대학 내부 학술 논의뿐 아니라 시민사회, 정책 논의 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확장될 여지가 크며, 복현콜로키움의 향후 행사에서도 유사한 주제의 공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호열 기자 | yeltwo59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