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322명이 발의한 총 23,429건의 법안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의원의 입법활동은 단일 지표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결론이 제시되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환경 속에서, 왜, 어떻게 입법 성과를 만들어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연구는 발의 건수, 가결 건수, 가결률이라는 세 지표를 결합해 입법활동을 평가하였다. 기존 발의 건수 중심의 평가는 실질적 성과와 전략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으며, 이 연구는 입법활동의 전략성과 정치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 국회의 입법활동은 오랫동안 발의 건수 중심의 평가 방식에 기반해왔다. 시민단체 평가 및 언론 보도에서도 발의 건수는 의원의 ‘활동성’을 상징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되었고, 그 결과 의원들은 양적 확대 경쟁을 통해 정치적 가시성을 높이려는 전략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발의 중심 접근은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낳았다. 첫째, 발의가 증가하더라도 법안의 실제 통과 여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둘째, 상임위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법안이 대량으로 쌓이며 입법 품질이 저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박상운 연구가 언급한 바와 같이, 양적 지표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실질적 정책 실현 가능성이 낮은 법안들이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이 연구는 발의 건수(양적 노력), 가결 건수(정책 실현력), 가결률(전략적 효율성)의 세 지표를 활용해 국회의원의 입법행태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이 세 지표는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다. 예를 들어, 발의 건수가 많더라도 가결률이 낮으면 퍼포먼스 중심의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발의 건수는 적지만 가결률이 높은 경우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형 의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이 연구는 제21대 국회의 입법환경이라는 특수한 맥락도 함께 고려하였다. 2020년 총선 이후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하며 과반을 넘어서는 ‘슈퍼 여당’이 되었고, 국민의힘은 소수당에 머물렀다. 이후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회는 여소야대 구도로 전환되었고, 법안 처리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정당 구성이 엇갈리는 정치적 긴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환경은 의원들의 전략적 선택과 입법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증 분석 결과, 가장 뚜렷한 패턴은 ‘역U자형 선수 효과’였다. 재선 의원의 발의·가결 건수가 가장 높았으며 가결률 역시 초선과 삼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의원의 입법활동이 단순히 경력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생애주기 중 특정 시기에 집중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사선 이상 의원은 입법활동이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다선 의원들이 입법 성과보다는 협상이나 조정 기능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전략으로 이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성별과 선출방식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여성 의원의 가결률은 남성 의원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지역구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보다 가결률이 높았다. 이는 여성 의원들이 양적 확대보다 정책 전문성·합의 기반의 전략을 택하는 경향을 보이며, 지역구 의원들은 정치적 책임성과 정책 실현 가능성이 높은 안건에 선택적으로 집중했음을 시사한다.
정당별 분석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략적 차이가 두드러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발의 건수와 가결률 모두에서 평균을 상회하는 활동성을 보였으며 정책형 의원 비중이 30.43%로 가장 높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략형 의원 비중이 35.77%로 가장 높아 소수당의 제약 속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동발의자 수가 가결 건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점은, 공동발의가 실질적 정책 협력보다는 상징적 결속 신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각화 분석 또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발의 건수(X축), 가결률(Y축), 가결 건수(버블 크기)를 결합한 다차원 차트에서 대다수 의원은 발의 건수와 가결률 모두 평균 이하에 분포하였다. 이는 국회의 입법활동이 일부 의원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많은 의원들이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발의는 많지만 가결률이 낮은 퍼포먼스형 의원군이 상당수 존재했고, 반대로 적은 발의로 높은 가결률을 기록한 전략형 의원도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의원들을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저활성형(28.0%), 전략형(27.4%), 정책형(23.4%), 퍼포먼스형(21.5%)이다. 특히 저활성형 비중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국회 전체적으로 입법활동이 과도하게 양적 경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은 활동성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국회의 입법활동을 단일 지표로 평가할 수 없으며, 정치적 맥락·경험·전략적 선택이 결합된 다차원적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발의 건수 중심 평가 방식은 의원들의 전략적 행태 차이를 포착하지 못해 정책 실현 가능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반영하는 새로운 평가체계가 요구된다. 향후 국회의 입법평가 제도는 양적 노력과 질적 성과를 균형 있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정당 지위·생애주기·협력 네트워크 등 정치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분석틀이 필요하다. 입법 생산성 논의가 단순한 통계 경쟁을 넘어 실질적 정책 실현을 목표로 전환될 때, 국회의 대표성과 책임성도 함께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의원 입법활동, 단순 발의 건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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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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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건수·가결 건수·가결률을 결합한 다차원적 분석이 드러낸 국회의 입법행태
출처: 연구방법논총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