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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인권행정’ 제도화 본격 착수… 행정 시스템 전반 개편 추진

박혜신 기자 | 2025.07.25 | 조회 26

선불카드 색상 논란 계기 삼아 ‘인권감수성 향상대책’ 발표… 인권영향평가 의무화, 독립옴부즈맨 검토

출처: 광주광역시청

출처: 광주광역시청

광주광역시는 2025년 7월 24일 시청 간부회의를 열고 ‘행정 내 인권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민생소비쿠폰 지급 과정에서 카드 색상 차별 논란이 제기된 데 따른 대응으로, 시는 인권행정 평가단 구성, 인권영향평가 의무화, 공직자 교육 개선, 인권옴부즈맨 독립기구 검토 등 4대 과제를 제시했다. 강기정 시장은 “행정 전반에 인권 감수성을 다시 심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며 실효성 있는 인권중심 행정을 약속했다.

광주시가 발표한 이번 인권행정 강화대책은 단발적 해명이나 사과의 차원을 넘어서, 행정 체계 전반에 인권 원칙을 내재화하겠다는 정책적 선언으로 평가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시 선불카드 색상을 수급 대상자와 일반 시민 간 구분되게 디자인해 ‘빈곤 낙인’ 논란이 발생한 사안이다. 해당 조치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 인권적 고려가 결여된 결과로,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의 비판이 거셌다. 이에 시는 같은 날 오전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긴급 자문회의’를 개최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오후에 시 실국장 및 산하기관장이 참석한 긴급 간부회의를 통해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대책의 핵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외부 전문가를 단장으로 하고 광주시 상임옴부즈맨을 간사로 하는 ‘인권행정 평가단’을 구성하여, 현재 시가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행정 각 영역에서 인권 침해 요소를 선제적으로 식별하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는 형식적 평가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개선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둘째, 인권영향평가를 기존의 임의적 규정에서 ‘강행규정’으로 전환하며, 평가 대상도 확대된다. 이는 인권 관점의 사전 점검을 의무화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인권 침해 요소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조치다. 특히 공공정책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소수자, 취약계층, 낙인 가능성 등 다양한 인권 요소가 평가기준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인권기준표 개발, 평가 매뉴얼 구체화, 사업 시행 전 사전심사제 도입 등 후속적 기술 행정도 요구된다.

셋째, 공직자 인권교육 체계도 전면 재편된다. 신규 공직자 대상 인권교육 비율을 확대하는 한편, 기존 재직 공무원 교육은 강의식에서 탈피해 참여형 훈련 중심의 생애주기형 인권교육으로 전환된다. 단순한 이수제 교육이 아니라 교육 성과가 서면평가 및 인사고과에도 반영되도록 제도화하는 방향이다. 이는 공직 내부에서 인권 감수성을 단순한 지식이 아닌 실천역량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넷째, 현재 광주시 직속 조직인 인권옴부즈맨 제도를 독립기구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독립성 확보를 통해 옴부즈맨 기능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다. 현재 옴부즈맨은 시정 참여기구로서 민원 중재 및 인권 침해 사항 조사 등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조직 구성과 예산 편성에서 시 집행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향후 인권위 또는 감사위원회와 유사한 독립법정기구로의 개편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조치는 강기정 시장의 직접 개입 아래 추진됐다. 강 시장은 간부회의 모두발언에서 “민주·인권·평화라는 도시 정체성이 구호에 그친 것은 아닌지 통렬히 반성한다”며 “효율과 편의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존엄이라는 점을 행정 전반에 각인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책 설계의 시작과 끝에 인권을 둘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인권영향평가의 강제성이 실무 행정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평가단의 권한과 전문성은 실효적 정책 개선으로 이어질지 등은 구체적 시행방안과 법적 근거 마련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다. 또한 교육 내용의 질과 공직자 평가 반영 여부, 독립 옴부즈맨 도입 시 행정조직 간 기능 충돌 가능성 등도 정책 설계 시 주요 고려사항으로 꼽힌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인권을 행정 내재화하려는 시도는 최근 몇 년 사이 확산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전국적 통일기준이나 강행규범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치단체 인권조례 가이드라인과 인권영향평가 도입 권고안을 제시해왔으나, 각 지자체별로 실효성이 상이하다. 이런 점에서 광주시가 추진하는 강제평가 전환과 조직 개편은 선도적 시도로서 타 지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광주시의 이번 ‘인권행정 강화 종합대책’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을 정책 전반에 제도화하려는 시도로서 상징성과 파급력이 크다. 향후 이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권영향평가 규정의 조례 제정 또는 개정, 독립옴부즈맨 기구의 법적 지위 정립, 교육 이수 관리체계 구축 등 다각적인 입법 및 행정 절차가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이번 간부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 부서별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연내 조례 개정안 발의 및 관련 위원회 협의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광주시의회가 적극 협력할 경우, 인권영향평가 강제화 및 평가단 제도화는 조속한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집단이 이 평가단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경우, 행정 감시 기능이 강화되고 제도의 정당성도 제고될 전망이다.

다만, 인권 감수성을 둘러싼 정책적 갈등, 예산 및 행정 부담, 공직자 반발 가능성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인권 행정을 제도화하려면, 시정 전반에 걸친 정치적 의지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참여가 병행되어야 한다. 광주시의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제도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향후 입법 동향과 실행력을 가늠할 후속 행정 절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혜신 기자 | aipen.hyes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