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2020년까지의 국회 본회의 표결과 법안 공동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수당 의원이 자신이 공동발의한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 또는 불참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세대 강신재, 텍사스대학교 박지영 연구진은 이른바 ‘와플링(waffling)’이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변심이 아닌, 한국 국회의 제도적 맥락에서 비롯된 전략적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와플링’이란 국회의원이 법안을 공동발의해놓고도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거나 출석조차 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정치적 책임성 결여 또는 유권자와의 입장 차이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한국 국회는 다당제와 위원장 대안제도 등 고유의 제도적 특성이 뚜렷한 만큼, 동일한 개념을 단순히 미국 이론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연구진은 제17대부터 제20대까지의 국회를 대상으로, 갈등 법안(conflict bill)이라 불리는 통과 찬성률 90% 미만의 법안에 주목했다. 총 21,292건의 의원-법안 짝(pair) 데이터를 분석해, 와플링 행동을 세 가지 유형-반대표, 기권, 불참-으로 분류하고 다층 로지스틱 회귀모형을 적용해 원인을 규명했다.
분석 결과, 전체 와플링 비율은 약 39%로, 상당수 의원들이 입법 전 과정에서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였음을 시사한다. 특히 다수당보다 소수당 소속 의원들이 와플링에 더 자주 가담했고, 그 중에서도 법안이 상임위에서 ‘위원장 대안’으로 수정되어 상정된 경우 와플링 확률이 높아졌다.
이는 위원장 대안 제도가 실질적으로 다수당의 의제가 법안 처리에 우선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표면적으로는 정당 간 합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당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의원 개인은 책임 회피 전략으로 와플링을 택하게 된다.
주된 제안자인 의원일수록 와플링 확률이 낮았으며, 단순 공동발의자일수록 최종 표결에서 이탈 가능성이 높았. 또한, 이념적으로 극단적 위치에 있는 의원일수록 와플링을 자주 보였고, 그 선택은 주로 기권이나 불참 같은 중립적 형식으로 나타났다.
재선 이상 의원들보다 초선 의원들의 와플링 비율이 높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거나 당내 역학 관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의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상임위 위원장이나 간사 등 당 지도부 직책을 가진 의원들조차도, 표면적으로는 ‘불참’이라는 형태로 와플링을 선택해 조직 내 입장을 모호하게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와플링은 개인의 일관성 결여 문제가 아니라, 다당제 환경과 권한 집중적 상임위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국회의 합의 중심 운영 방식은 의원 개개인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모호하고 전략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결국 와플링은 정치적 책임성의 문제이자 동시에 제도 설계의 문제이다. 의원 개인이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입법과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담보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을 통해 와플링 현상을 단순히 윤리적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입법 구조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상임위에서 위원장 대안 제도가 너무 광범위하게 활용되면, 공동발의 단계에서 의원의 의도가 본회의까지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된다.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원 개인의 입법 이력에 대한 유권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공동발의와 실제 표결 사이의 이탈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동시에 위원장 대안이라는 제도가 가진 절차적 효율성과 권력 집중 문제 간 균형을 조정하는 제도 개선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한국 국회의 다당제 환경에서 와플링은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생존 전략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의회 신뢰와 입법 효능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규명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은 입법부의 제도적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논문: Forthcoming
유튜브:
https://youtu.be/Itj8Mc0fSgE
공동발의하고 반대표?…한국 국회의 '와플링' 전략 분석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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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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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20년 conflict bill 분석 통해 드러난 소수당 의원의 이중전략

출처: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