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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누가 지지했는가” — 민주주의 내부의 위험한 균열

엄기홍 기자 | 2025.06.13 | 조회 29

감정적 분열, 대통령주의 성향, 정치 신뢰가 민주주의 후퇴를 가능케 하다

출처: 저자의 논문

출처: 저자의 논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계엄령을 선포한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경고등을 켰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위헌·위법으로 판단하며 대통령을 파면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이 극단적 조치를 지지했다. 왜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조차 계엄령에 대한 지지가 존재하는가?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정인관 교수와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박범섭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정밀한 분석을 시도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에서 수집한 독자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계엄령을 수용하는 경향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즉, ‘감정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 ‘위임 민주주의 성향(delegative democratic attitude, DDA)’, 그리고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다.

먼저 배경부터 보자. 당시 윤 대통령은 국회가 “친북세력의 발호를 방조하고 있다”며,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계엄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고, 국회는 단 2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이후 대통령 지지율은 11%까지 떨어졌지만, 몇 주 만에 41%로 반등했다. 연구진은 이 '반등'에 주목하며, 그 기저에 깔린 시민들의 태도를 탐색했다.

첫 번째 분석 요소는 감정적 양극화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매우 좋아하고, 반대편은 매우 혐오하는 경향이 클수록, 계엄령 지지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이 크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호감으로 인식하는 시민일수록, 계엄령을 정당한 조치로 여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두 번째는 위임 민주주의 성향이다. 이는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도 필요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성향이 강한 응답자들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법을 무시해도 된다”고 동의하는 경향도 컸으며, 계엄령을 민주주의 절차의 일탈이 아니라 ‘필요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여겼다.

세 번째는 정치적 신뢰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계엄령 지지가 증가했다. 반대로 국회나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가 높은 시민은 계엄령에 비판적이었다. 이는 어느 제도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 성향이 진보적인 지지층에서도 일부 계엄령 지지 성향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계엄령이라는 개념이 특정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맥락에서 수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감정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미국이나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분류되었지만, 이번 사건은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는 외부보다 내부의 균열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며, 계엄령 선포가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한 중대한 위헌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제도의 기능만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결국, 계엄령 사태는 헌법의 문제이기 이전에, 시민들의 정치적 신념과 태도, 그리고 신뢰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이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를 신뢰하는가’, ‘무엇을 우선하는가’에 따라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도, 흔들릴 수도 있다. 향후 국회는 비상대권의 요건과 절차를 더 엄격히 규정하는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시민 교육과 토론을 통해 감정적 분열을 완화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유튜브: https://youtu.be/PcQK7EvKcG0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